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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볼로는 부활을 믿지 않았다. 사흘 만에 성전을 다시 세운다는 허황된 소리에 걸맞게, 다가온 자신의 운명을 알고서 체념했다는 인과, 그리고 그 죽음이 속죄양을 일컬었던 옛 예언이라는 해적마저 부정했다. 그 혼자서만 깨달은 사실은 아니리라 장담했다. 그러나 그래봤자, 고작 두터운 책의 얇은 페이지에 불과한 것을. 돌이켜보면 하릴없이 짧았다. 도망친 고향에서부터 끈질기게 자신을 압박했던 그 얇은 것을 칭하던 상관없는 것들은 기억. 그 것을 파헤치는 불쾌함은 벌레가 그대로 눌려 죽은 책 페이지를 펼쳐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대지 않고 들여다볼 수 없듯이, 표지만으론 결코 속을 짐작할 수 없는 것. ㅡ최초의 서적은 그저 말아둔 두루마리의 형태였건만, 그 뒤로 딱딱하고도 두터운 표지에 닫혀 버렸으니, 그건. 종이가 양피지나 파피루스보다 얇아서일까? 보관의 용이성을 위해서였을까도 싶다만... 종이는 얇다. 그런 당연한 소릴 하는 남자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 ㅡ하지만 디아볼로. 나는 지식을 가둬서가 아닐까 생각한단다. 선악과는 비유인 거야. 그분께서 지으신 다른 창조물과 달리 '인간'만이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데엔 분명히 의미가 있단다. 그것도 '그분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우리가 .....
수 십번을 귀에 박히도록 들은 내용이었다. 그렇게 낙원에서 내쫓겼다는 이야기, 아담과 이브가 지은 '원죄'라는 것, 그들의 과오를 풀기 위해서 지상에 온 성자와 무지한 인간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도 알고 있었다. ㅡ우리가, 순종해야 한다고요? ㅡ사랑받는다고 말하려고 했다만, 그것도 맞지. 신이 인간을 어떻게 지었는지는 말하기 다름 분명히 인간들은 신을 닮고 싶어 했다. 책과 문자를 통해서 내용을 독점했다. 읽히기보다도 소장되는 가치를 높이 평가해 글자 하나하나를 꾸미는데 정성을 기울여 수도사들이 일평생을 바친 사치가 만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디아볼로는 책을 즐겨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양부는 상당한 독서가로 박식했다. 인터넷이 있기 전에 지식은 책에 담겨 있었으니까. ㅡ그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단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어린 디아볼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서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
신부란 고된 업이었다. 그것은 비단 디아볼로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신앙은 한 500년 전, 무식과 악취의 시대 시골에 독실한 신자들은 몇 없었고 겨우 교구의 구색을 갖춰나가는 형편이었다. 노인들 뿐인 주말 미사를 마치고 혼자 남아 기도를 를 드리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자면 디아볼로는 가슴 어딘가가 답답해졌다. 신은 믿는 건 멍청한 작자들 뿐인데. 아무도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석상이나 포도주에서 신을 찾는 그런 무지한 치들을 계도하는 보람을 느꼈을 텐데 말이다. 한낮 어린아이인 자신을 다루듯이.... 그는 숨을 죽이고 성당을 빠져나왔다. 같이 기도하자고 말할 게 분명해서. 신의 가르침은 지루하다. 하나님의 집에 찾아가는 것을 기뻐하는 건 그의 자식 정도였을 테니 말이다. 실은 그 일로 아이들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시비에 시달리는 건 꽤 예전부터였다. 당신을 일컫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떻게 다른지를, 얼굴도 몇 번 본적 없는 어머니에 대한 모욕을 들었다.
ㅡ디아볼로?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결국 자신이 자신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신부의 아들이지. '아버지'의 아들. ㅡ들어오지 그랬더냐. 같이 기도를 했으면... ㅡ됬어요! ㅡ잠깐만.... 디아볼로! 늙은 신부는 자신을 쫓지 못한다. 오늘도 타지인들은 관광이랍시고 들낙거리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촌스런 시골 마을, 비싼 비행기표로 딱 한 번 수학여행을 나가봤을 뿐, 물 위를 걷지 못하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섬. 사실 디아볼로가 정말로 귀를 기울인 건 양부가 성서가 아닌, 낯선 이야기를 꺼낼 때였다.
ㅡ옛날 옛날에 재주가 뛰어나서 혀 끝으로 신들조차 구워삶았던 인간이 있었단다.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선택권은 없었다. 사택에는 텔레비전이 없었고, 라디오는 가톨릭 방송으로만 주파수가 고정되어 있었지만 중요한 행사가 아닌 이상 듣지 않았다. 대부분의 날에 변변한 방문자도 없어서 적적해질 때면 그는 양아들을 말벗으로 삼았다. ㅡ죽어서 사자에게 끌려갔음에도, 뻔뻔하게 그곳의 왕에게 자신의 아내의 핑계를 대고 돌아왔단다. 오르페우스 말고 명계 땅을 밟았다 돌아온 사내는 없을 거야. 아니, 없다고는 못 하겠구나... 결국 중요한 건 시시포스가 결국 신들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ㅡ그래서, 심판이라도 받았나요? ㅡ그래. 끝내 저승에 끌려온 그는 감히 신들을 업보를 치르기 위해 지금도 어느 이름 모를 언덕에서 돌을 굴리고 있단다. 가볍지도, 그러나 움직이지 못할 만큼 무겁지도 않은 돌은 꼭대기에 도착하기 전에 꼭 굴러떨어지고야 마는데 절대적인 권능에 도전한 괘씸함, 그 죄를 물어 시시포스는 지금도, 헛된 과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ㅡ그래봤자 이도교들의 헛된 우화일 뿐이란다. 양부는 마지막에 항상 그 말을 덧붙였다. 그런 식으로 매번 이야기를 망쳤다.
디아볼로는 언제나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은인이자 자애로운 신부를 마주한 시절의 고아는 착하고 무력했다. 그 둘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철이 들기 전부터 빗자루질을 하며 제단을 닦으면서 자란 디아볼로는 가톨릭의 위선에 대해서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바티칸에서 본 로마 조각상만 해도 그랬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면서 성상을 세우고, 이도교라고 칭하는 고대 그리스 문명에 열광해서 조각상들을 수집하고, 신앙의 중심지를 박물관으로 만든 게 교황이였는데, 어찌 신앙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분명 예수의 제자들은 서로를 사랑하라, 이웃으로 대할 것을 가르쳤던 반면, 로마 가톨릭은 위계와 권력으로 짜인 권력기관에 불과하다. 사랑이라는 가르침은 해체당한 채로 못 박혔고 교황은 신의 대리자이기 이전에 세속군주, 그 예수가 탓했던 예루살렘처럼 장사치들로 가득한 성지. 그 괴리와 모순은 알아차리고 거부하기도 전에 디아볼로의 일부가 되었다. 조금은 감사하기도 했다. 그 교단에서 영향을 받은 내면에서 '조직'을 운영하고 싶다는 욕망을 착안할 수 있었었으니까. 이어서 철의 시대가 이어진다. 약탈, 전쟁, 강간... 그 시대엔 무슨 폭력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스의 폭풍우는 디아볼로의 고향보다 세찬 모양이었다.
ㅡ시시포스는 지금도 헛된 과업을 이어나가고 있단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홀려선 안되지. 인간을 사랑하지 않은 존재들을 모두 거짓된 귀신이고 악령이니까. 양부의 말은 퍽 우스웠다. 부하들의 귀는 막아두고서 혼자 세이렌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들은 오디세우스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 이야기들은 이도교지만 성서는 또 무엇이 다른가? 아담과 이브가 삼킨 선악과를 뱃속에서 뱉었으면 뱉었지 어찌 저지른 죄를 사할 수 있단 말인가? 심판하던가 죽이던가, 둘 중 하나만 했으면 했다. 죽음으로 전 인류를 구원한다는 소리가 더 허무맹랑할 판인데. 다시 살아난다? 꾸며낸 이야기라면 그게 뭐 대수인지, 디오니소스는 바다에 빠지고 나서도 살아난다. 헤라클레스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올림포스에서 살아난다. 불교인지 힌두교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윤회를 거듭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디아볼로는 성스럽다고 딱지붙여진 그 책을 죽어도 믿지 않는다. 위대하신 신들의 자존심을 꺾은 한 대가가 바위를 굴려 올린다라? 고작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게 형벌이라면 오히려 우스웠다.
어차피 저승에서는 무료하기 짝이 없을 텐데, 그까짓 소일거리가 늘어나는 게 대수겠냐. 시시한 과업을 이어나가며, 시시포스는 신들을, 비웃고 있으리라 .... 그렇게 생각하노라면 가슴이 후련해졌다. 악운이 허락하는 이상 하고픈 일은 해내리라고 다짐했다. 마약 사업을 벌이지 않더라도, 갱의 보스가 아니더라도 그는 무언가 해냈을 것이다. 자신만의 왕국을 가슴에 예비해 두었다. 매일 아침, 본국이 있는 동쪽 하늘을 보면서 섬을 벗어나는 미래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 결심이 킹 크림슨보다 앞섰다. 내가 전능하지 않더라도, 미래를 정복할 수 없더라도 꼬맹이었던 자신은 무언가 하겠다는 의지를 지녔다. 도나텔라 우나와 잤던 것 또한, 어떻게든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객기가 있었다. 그때 자신은 죠르노 죠바나에 뒤지지 않을 만큼 무모했었는데, 이집트까지 아르바이트를 가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더라. 그런 젊은 나날을 떠올려보자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로, 레퀴엠에서 벗어나긴 글러 먹었지만 말이다. 불행은 남의 이야기일 때만이 이롭다, 어느 영웅 혹은 죄인의 몫이 자신에게 닥치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러한 '형벌'을 직접 겪는 일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시시포스 본인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뼈저리게 반성했을지도 모른다.
탈출구 없는 지하에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을 지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죄악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냐고.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고 자책이나 하는 것인가. 자신의 의지로 돌을 붙들 수 있는 시시포스의 처지는 좀 더 나았다. 디아볼로는 시시포스에게 떠받들어지는 돌에 더 가까웠다. 만약 바위가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의지도 허락되지 않고서 오직 나락으로 떨어진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선 옛일을 생각하는 게 나았다. 프랑스 인의 덜미를 놓친 것, 괘씸한 반역자들, 그의 손에 넣지 못한 것. 화살의 진정한 힘. 레퀴엠. 골드 익스피리언스, 레퀴엠....이라고 했나? "하아... 하" 어딘지 모를 곳에서 다시 한번 태양은 떠오른다. 다시 한번 그에게 기약 없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중해를 걸친 먼 산으로 막 동이 터오는 듯했다. "오랜만이야. 디아볼로." 처음엔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자신의 망상이거나.
레퀴엠에 당하는 동안 그는 수 많은, 셀 수 없는 타인과 조우했다. 하지만 그들은 당연히도 자신의 정체를 몰랐다.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비정한 세계는 디아볼로를 무시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는... "네 녀석. 은.... " 그럴만한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트리시 우나, 자신의 딸. 지긋한 핏줄이었다. 달의 뒷면처럼 낯설었다. 식은 땀이 마른 자리에 다시 한기가 머금은 듯 소름이 돋았다. 돌이켜보면 사진이 아닌 그녀의 얼굴을 보았던 것도 몇 번 없었다. 정면으로 마주보았던 적은 없다시피 했다. 베네치아의 성당에서는 그녀의 목을 노렸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디아볼로가 꺼질듯한 촛불 같았던 악을 쓴 모습, 그때가 유일했던가?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겁나진 않았다. "이번엔 너인가! 너도 레퀴엠의 일부! 나를 죽이려는 거냐!"
햇볕을 등지고 있어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길게 흘러내려트린 컬의 머리카락. 처음 만났던 시절의 도나텔라보다도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디아볼로 자신이 '배제된' 세계에서도 시간은 온전히 흘러간단 말인가. 자신을 끌어내리고서 멀쩡히 살았단 말인가? 그 편린은 야누스와 같이 희망과 절망의 두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대면하고 있었다. 한 때는 시간도 기회도 디아볼로의 권능이었다. 죠르노 죠바나의 레퀴엠으로 주도권을 빼앗겼다 한들, 레퀴엠은 무의미한 반복일 뿐이었다. 자신을 괴롭힐 지언정 진정으로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죽여봐라! 나는 절대 죽지 않아! 끝나지 않는다!" 여인은 너무나도 침착했다. "당신 말야.. 처음에 나를 죽이려고 했었기 때문에 겁이 났었어." 그 말을 들은 디아볼로의 배알이 비틀렸다. 그런 말을 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 입장에선 당연했을지도 몰라.
15년간 모르던 혈육이 부담스러운 건 피차 마찬가지였을 테니." 어느 날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도 기가 막힌 소리긴 했다. "네 꿍꿍이는 뭐지?" 그녀의 손에 들린 건 한 자루의 총이었다. 마치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목숨을 건 결투를 준비해온 듯 결연했다. 반전은 없다. 그는 그녀와 해후 이전에 결말을 알고 있었다. 이미 수십 번을 반복하고도 남은 최악의 악몽이었다. 탕! 바람이 멈춘 듯했다. 익숙한 죽음이었다. 그렇지만 무언가 달랐다. "왜... 사라지지 않지?" "깨닫지 못한 모양이네. 당신의 레퀴엠은 멈췄어." 그녀의 말에 디아볼로는 눈을 크게 떴다. "... 레퀴엠이? 어떻게?"
트리시 자신이 레퀴엠을 멈췄다는 듯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에게 그럴 능력이 있나? ... 그럴 동기는? 어째서? 죠르노 죠바나가 속했던 부챠라티의 팀원이 트리시를 만나게 되었던 건 디아볼로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어쨌든 타인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디아볼로가 트리시였다고 해도 죠르노를 따르지 않았을 거라고 설마지만, 그녀가 죠르노를 배신했나? "트리ㅅ .. . " 탕 탕! 탕! "그것 말고 당신에게 할 말은 없어.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라고." 죠르노 죠바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트리시는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제 자신은 죽을 수 있다, 레퀴엠이 멈췄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족쇄처럼 여겼지만, 그리 개운하지도 않았다. 그거참 고마워할 일이기도 했다. 농락당하지 않게 됨으로써 동요했지만 트리시는 자신의 적이었다. 목의 핏대가 지끈거려서 더 이상은 올려다보는 것도 무리였다. 디아볼로는 힘이 풀려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습윤한 바람에 모래알들이 코로 잔뜩 들어가더라도 재채기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문뜩 낯선 해변에서 모래알들에서 샤르데냐, 자신의 고향을 떠올린 것이다. 그의 집은 십자가가 달린 성당이고, 보잘것 없는 종 소리가 울려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을 알린다. 디아볼로는 가톨릭을 거부하고 경멸했을지언정 진심으로 미워하진 않았다. 신앙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열정이지만 유년을 함께한 성서는 그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무엇을 숨기겠는가. 무척이나 불경스러운 발상이었지만, 신의 아들이 자신과 꽤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구세주, 그리스도이기 전에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 촌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출생이 미심쩍다는 점, 요셉과 결혼 전부터 배가 불러온 마리아에 대해서, 당시에도 누군가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염문을 속삭였겠지, 부정한 자식이라고. 비웃었겠지. 그런 그가 누군가의 결혼식에 갔다. 그 자리엔 억지로 떠밀려서 갔을 거라고 디아볼로는 생각했다. 시골은 무척 협소한 사회이기 때문에 지인의 결혼식에 이유 없이 빠졌다가는 외톨이가 된다. 아니, 그는 이전부터 외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고향을 떠날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지.
주인집은 예수가 손댄 항아리의, 맑아야 할 물이 핏빛으로 물든다. 그것이 최초의 이적. 멋모르는 이들은 잔치에 흥을 돋굴 수 있게 되어 기뻐하고 취해 버린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디아볼로가 매번 눈을 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예수는 그 물에서 죽음을 보았을까? 모든 기적을 암시한 것은 충동, 위험한 길을 광야로 나아간다.... 그러나 시련은 극복해내면 그만. 위대한 길은 이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포도나무처럼 사람들의 삶에 얽힌다. 디아볼로는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정해야 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다시 되살아 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디아볼로만 모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던 까닭이다. 자신의 인생으로 누군가를 구원할 작정도 아니니 이것이 최후라면 꽤나 그럴듯하지 않는가, 자신을 증오하는 딸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죠르노 죠바나보다는, 더 나은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왜냐하면 그 예수조차 딸은 없었으니 말하는 거지만...
그래. 최소한, 무언가는 이루었다. 그 시각, 네아폴리스 시내에 위치한 파시오네의 응접실에서 보스는 커피를 마시던 참이었다. 테이블 의 상당한 켠에 디저트를 늘어놓은 그의 오른팔이 아침부터 달달한 라떼를 마시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트리시는 도대체 어디서 그 녀석을 찾은 거람?" 능력을 모르는 스탠드사를 상대하는 일은 언제나 까다로웠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디아볼로의 킹 크림슨은 강력했다. 미스타로선 '레퀴엠'이라는 화살의 능력을 빌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어떻게 상대할 수 있었을지 오금이 저리는 것이다. "데드 13이라고 했었나? 꿈속에 가둔다는 스탠드. 기가 막히잖아~. 뭐든지" "그러고 보니 폼페이에서 상대했던 암살팀의 능력과 비슷했던 기억이 있네요."
새 보스는 건조하게 호응했다. 상대방의 스탠드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선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아앙? 아바키오랑 있었을 때 말이야? 난 그 녀석을 모른다고..." 트리시가 디아볼로를 죽이겠다면서 찾아서 데려온 스탠드사는 우연히도 죠르노의 아버지의 부하였다. 그 작자가 거북이 폴나레프를 보고 혼자서 기겁해서 과거 폴나레프와 그 동료들을 '암살'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과거를 술술 털어놓았기 때문에 알 수 있던 정보였다. 죠르노는 악당을 아버지로 둔 것에 트리시와 동질감을 느끼기보다 죽은 부친이 유능했다는 점에 주목한 자신이었다. "꿈에 들어갈 때, 스탠드 발현하지 않는 이상, 꿈속의 세계에서 스탠드를 쓸 수 없다고 했죠." "으흠... 그래. 나도 나중에 발견한 카쿄인의 일기장에 따르자면 그랬지. " 미스타는 캐물었다. "저기, 그럼 꿈이 깨면 어떻게 돼? 악몽이었던 건가" "꿈이, 깬다라... ?"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죠타로가 묵묵히 발견해서 수습했던 카쿄인의 일기장이 없었더라면, 압둘과는 다르게 타로카드에 문외한인 폴나레프는 DIO의 수하들 중 한 명을 기억도 없이 상대했다는 것을 영영 모를 뻔했다. "어떤가요? 폴나레프 씨. 꿈속을 기억할 수 있었나요?" 죠르노는 기회를 봐선 그 자를 영입할 작정이었다. 자신의 파시오네에 어울리는 인재로서 .... "글쎄. 나로선.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만.. " 50일간의 여행은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었다. 변변찮게 거북이에게 신세를 지고 DIO의 아들과 같은 배를 타기까지 한 처지라 죠타로에게 연락을 할 깜냥은 생기지 않았다. 몸이 멀어진다니 마음이 멀어지는 건 이런 걸까 싶었다. 트리시 우나, 처음 알았을 때 소녀였고 지금은 근사한 여인이 된 그녀에 대해서도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건, 패륜, 상대가 디아볼로가 아니라면 정말 못 할 짓이지만 트리시는 디아볼로에게 목숨을 위협당했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그동안 디아볼로의 최후에 대해 언급을 피해왔던 죠르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걸로 폴나레프는 짐작했다. 악몽이라면, 언젠가 다시 그녀의 인생에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클 것 같았다.
과연 어떨까. 그녀는 마음속 악마를 지워낼 수 있을지.... 순간은 긴 시간이다.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단 느렸다. 스탠드사의 영향에서 벗어났다는 걸 알았다. 꿈속의 총은 사라졌고 그녀는 빈손이었다. 사르데니아의 오직 같은 것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그 시체 뿐이었다. "당신이 원하는 꿈이었나요? 트리시?" 스파이스 걸의 질문에 쉬이 입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비행기에서 자신을 뒤쫓던 고깃덩어리를 처치하는 것과는 달랐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여명 사이에서 아버지를 보았던 날, 그에게 목이 죄였던 것을 생각했다.
"꿈? 그가 죽은 건 현실이야." 그 스탠드사에게 의뢰한, 트리시의 꿈이었다. 디아볼로는, 한때 공포를 지배하던 남자는, 그 촌극을 위해 불려나온 등장인물일 뿐이었다. 꿈이었다면, 그건 트리시의 꿈이었다. 디아볼로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무력했다. "게다가 죽은 사람은 꿈꾸지 못할 걸."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땀이 난 손을 치맛자락에 닦았다. 어쨌거나 단 한 명을 위해서 미스타에게 사격하는 법을 배웠던 보람은 있었다. 운명이 내 손에 온전히 잡혔다는 기분은 비록 착각일지라도 상쾌했으니까 말이다. 미스타에게 빌린 리볼버를 돌려줘야하는게 아쉬울 정도였다. 죄책감은 아니지만, 미묘한 불쾌감을 남은 인생에서 떨쳐버리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래를 물들이는 심홍빛 체액은 그녀의 인생의 페이지에 남을지니. 그녀는 부활을 믿지 않는다. 트리시 우느냐는 기적이 책으로만 남길 바라는 한 명이다. 그리고 자신의 빌어먹을 아버지에겐 공동묘지의 한 칸도 아깝다. 트리시는 피가 묻은 모래알들에게도 미안한 심정이었다. "잠깐 도와줘, 스파이스 걸."
잠시 고민한 끝에 트리시는 스탠드의 도움을 받아 디아볼로를 바다로 던지는데 성공했다. 물고기밥이 될 걸 생각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Arrivederci, Padre. " 언젠가 다시 만날 것처럼 태연히 인사를 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지, 그리 속삭이면서 잊어버리는 거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미스타처럼, 웃어 보자. 그러고 보니 미스타에겐 고맙다고 해야겠는 걸....밥이라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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