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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중 드림캐가 출연합니다.

 

*리카르다 테렌티우스​​

  으, 빌어먹을. 왜 눈 덮인 산인데. 디아볼로는 투덜거리며 동굴 안에 웅크려 있었다. 불을 피우려면 나뭇가지가 필요한데 동굴 안에는 잔가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를 구하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디아볼로는 이전에도 먹을거리나 물을 구하려 은신처 밖으로 나갔다가 죽은 경험이 다수 있었다. 주로 곰을 비롯한 맹수에 쫒기다 죽거나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체력이 다 해 죽었다. 산에서 살아남는 데에는 도가 텄으나 매번 색다른 방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디아볼로는 여러 곳 중에서도 산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하지만 밖이 무섭다고 동굴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아사하거나 동사하거나 둘 중 하나다. 디아볼로는 추위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환장하겠다고 구시렁댔다. 산은 늘 이렇다. 모 아니면 도다. 무엇이든 확실할 것을 추구하는 디아볼로에겐 최악의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디아볼로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안개 낀 바깥을 살피다 용기를 내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겁에 질린 토끼처럼 조심스럽게 동태를 살폈다. 며칠동안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가라앉았다. 햇빛이 눈에 부딪쳐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새 몇 마리가 허기를 채울 무언가를 찾아 하늘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이면 괜찮겠군. 디아볼로가 용기를 내 몸을 일으켰다. 지금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다. 겨우 발에 힘을 주고 움직이려 하는데 동굴 깊은 곳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보스. 저번에 섣불리 움직였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벌써 잊어버리신 겁니까?”
  고아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여성의 목소리에는 독을 품은 날이 서 있었다. 그러나 발화자는 그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언뜻 들으면 나른해 별로 위협이 되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생물이라면 그 목소리를 듣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긴장감에 디아볼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 여자다. 자신이 죽을 때마다 조롱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신이 또 찾아왔다. 디아볼로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어차피 그 애송이 – 죠르노 죠바나의 술수로 끝없이 죽는 운명이라지만 이 여자가 있으면 배로 재수가 없다. 그가 나타날 때마다 디아볼로는 참신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어나갔다. 이번에도 나는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나? 뺨 위로 차갑게 식은땀이 흘렀다.
  디아볼로는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이번엔 늦었군. 유령이 길을 잃을 일은 없고, 늦잠이라도 잤나? 피암마 칼립소.”
  “리카르다, 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이제 그 이름은 별 의미 없으니까요. 누굴 죽이는 것도 아니고.”
  아, 당신은 예외지만요. 리카르다, 혹은 피암마라 불리는 여성이 아침 햇살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받아쳤다. 분명 입도 눈도 웃고 있는데 왜 싸늘하지. 주변 온도가 순식간에 10도씩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여유로운 리카르다의 대답에 디아볼로는 다시 초조해졌다. 의뭉스러운 여자. 리조토만큼이나 속꿍꿍이를 알 수 없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이 말인가. 아니, 리조토는 적어도 히트맨 주제에 동료애라는 게 있었지. 이 여자에게 그런 게 있을까?
  리카르다는 디아볼로와 닮았으면서 동시에 결정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디아볼로에게 있어 ‘결과’보다 중요한 건 없다. 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피붙이가 방해가 된다면 죽인다. 실제로 디아볼로는 제 어머니를 죽였고, 제 딸을 살해하려 했다. 물론 두 번째 계획은 웬 신입 때문에 화려하게 망해서 이 꼴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가 갈린다. 망할 죠르노 죠바나, 빌어먹을 부르노 부챠라티.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디아볼로는 손에 집히는 대로 돌을 집어 동굴 바깥 쪽으로 던져댔다.
  리카르다 역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불사른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불행과 고통에 둔감하다는 특징을 동반한다. 하지만 만일 제 사소한 실수나 선택으로 인해 가족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면 리카르다는 물러나고 만다. 리카르다에게 있어 보스의 명령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피붙이. 애초에 파시오네에 들어온 것도, 그 어린 아이를 거리에 만연한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니, 유일한 자식을 향한 리카르다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 하다.
  반대로 말하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을 버리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리카르다였다.
  리카르다는 그런 면에서 디아볼로보다 무모하고 잔악했다. 원래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하지 않았는가. 여러 히어로물만 봐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이 각성해 그들을 죽인 자를 호되게 응징하지 않은가. 그런 이치다.
  그래서 리카르다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보스에게 목숨을 내놓았다. 그가 자신을 두려워해 죽일 것임을 알면서도 그의 계획을 방관했다. 살아서 많은 이를 죽임으로써 적이 많아지는 것과 죽음으로써 적을 없애는 것. 리카르다는 후자를 선택했다. 단지 그 이유였다. 하지만 리카르다는 곱게 죽지 않았다. 그는 여러 장치를 설치해두었다. 디아볼로가 그의 딸을 감시 및 보호라는 명목 하에 파시오네의 일원으로 거둘 수밖에 없는 교묘한 장치들. 디아볼로든는 리카르다가 파놓은 함정으로 인해 그의 자식을 조직 안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디아볼로는 그것을 최악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레퀴엠이야 죽을 상황만 잘 피하면 된다. 그러나 디아볼로가 계속 죽는 데에는 리카르다의 스탠드가 한몫 했다. 본체를 보는 순간 죽는 스탠드. 필연적인 죽음을 부여하는 힘. 본인만큼이나 잔악하고 무정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디아볼로는 계속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리카르다가 그의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악몽은 계속될 거다.
  “젠장, 이번엔 어떻게 죽일 건데.”
  디아볼로는 성질을 내며 물었다. 리카르다는 얄밉게도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글쎄, 그건 당신이 이번 레퀴엠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 디아볼로는 다시 혀를 찼다. 하여튼 깐깐하기는.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리카르다가 빙긋 웃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조용히 찌르는 일침에 디아볼로는 할 말을 잃었다.
  디아볼로는 한 발을 바깥으로 내밀었다. 리카르다가 의외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죽을 용기가 생기셨나 보네요?”
  하여튼 저 여자는 입을 조금이라도 가만 두질 않는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과묵할 것 같은데. 디아볼로는 리카르다를 째려보았다가 완전히 밖으로 나갔다. 리카르다는 따라가지 않았다. 좋은 징조일지, 아니면 또 죽을지. 디아볼로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그에게 보낸 뒤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복히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디아볼로는 이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깨끗하게 닦인 그릇을 손으로 문지를 때와 같은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디아볼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걸었다. 이미 죽은 몸이라 그런지 그닥 춥지는 않았다. 아니면 이미 손발에 감각이 없어졌거나.
  디아볼로는 주변을 경계하며 걸었다. 혹시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눈을 부릅 뜨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다행히 포악한 동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로 토끼나 너구리, 여우였다. 곰이나 늑대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디아볼로는 몸을 한껏 낮추고 걸었다.
  불 때울 장작을 구하러 대장정을 떠난 지 대략 10분이 지났다. 그 사이 디아볼로는 꽤 많은 나뭇가지를 주웠다. 주변을 살필 큰 가지도 주웠다. 디아볼로는 그 나뭇가지로 주변을 두드리며 이동했다. 덕분에 지금까진 죽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다. 이것만 있으면 어떻게든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다. 설마, 이번 레퀴엠에서는 죽지 않는 건가? 디아볼로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디아볼로는 나뭇가지로 오른쪽 옆을 짚었다. 딱딱한 지면이 느껴졌다. 이쪽은 안전한 지대군. 디아볼로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발에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바위였다. 이 바위 아래는 안전한 곳인가? 디아볼로는 다시 나뭇가지로 아래를 두드리려 했다.
  “어머, 꽤 많이 모으셨네요.”
  리카르다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디아볼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초록눈을 주홍빛이 가득 채웠다. 그가 서늘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정말 그 바위, 안전할까요?”
  리카르다의 말이 끝나자마자 발목을 접질렀다. 눈이 녹아 미끌거리는 바위에 삐끗한 디아볼로는 균형을 잃고 밑으로 떨어졌다. 디아볼로는 황급히 나뭇가지를 꽂아 땅을 짚으려고 했다. 그러나 힘이 너무 셌던 걸까. 나뭇가지가 허무하게 부러지고 말았다. 머리부터 떨어진 디아볼로는 그대로 떨어져 굴렀다.
  아래를 바라본 디아볼로는 깨달았다. 바위 아래는 바로 낭떠러지였다. 디아볼로는 발악하며 절벽 끄트러미를 손으로 움켜쥐려고 했다. 그러나 눈이 녹은 바위는 미끌거려 잡히지 않았다. 디아볼로는 안간힘을 썼지만 손은 자꾸 미끄러져 내려갔다.
  리카르다가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디아볼로는 그를 보며 악바리를 썼다.
  “뭐 하는 거야! 좀 잡아달라고!”
  그러나 순순히 디아볼로의 부탁을 들어줄 그가 아니었다. 리카르다는 표정 없는 얼굴로 디아볼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피식, 눈웃음을 지었다.
  “제가 당신 부탁을 쉽게 들어줄 것 같습니까?”
  리카르다는 손가락을 하나씩 걷어냈다. 디아볼로가 겁에 질린 얼굴로 리카르다를 바라보았다. 안간힘을 쓰며 그는 도리질을 쳤다. 그러나 리카르다는 매정했다.
  “그럼 다음에 만날까요? 보스?”
  리카르다는 마지막 남은 새끼 손가락을 풀어냈다. 디아볼로는 비명을 지르며 끝없이 떨어져내렸다. 비명이 산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소음이 사라졌다. 곧 산은 평화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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