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가 들려주는 고전적 사망조곡 A Classical Death Suite
<프롤로그>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마치 오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반복되는 자장가 노랫말처럼,
우리에게 죽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많은 동화들처럼 때로는 교훈을 주기도 하고,
한낱 우스개소리처럼 넘어가기도 하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모두 그렇게
그 남자를 기억하며 저마다 속삭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듯
우리는 마치 유령처럼
빙글빙글 그의 주위를 맴돌며
그의 귀에 속삭여줍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1장>
이제,
또 다시 그 남자가 들려주는
오래된 죽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마치
내 머리를 잘라 큰 은 접시에 받쳐 놓고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대신 생각하게끔
일정하지도 일관되지도 않습니다.
그 남자 역시 그랬습니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머리를 잘라 옆에 놓아두듯,
삶과 순수, 현실을 바라보는 어린 마음과
자신과 타인의 죽음만을 바라보는
늙고 음울한 마음을 분리했습니다.
잘라낸 머리는, 생각을 마치고 썩어 없어질 때까지
언제든 사악한 죽음의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뒤틀린 미소를 짓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
그것이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죽음으로의 철저한 밑준비이자 여정이겠지요.
죽음을 인간이 혹 선택할 수 있다면,
삶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유일한 선택의 기회일 겁니다.
그 선택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존재를,
우리는 악마, 또는 살인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스스로 잘라 옆에 놓은 자신의 머리가
삶과 생이 지속되는 동안
수없이 대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은,
결국 타인에게서 삶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래야만 했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았기에
갈수록 불행했기 때문입니다.
미치도록 왕이 되고 싶었던
오랜 비극 속의 인물들처럼,
끊임없이 업을 짓고 죄악을 쌓아
죽음의 악순환을 반복한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남자 역시 그 선택 속에서 살았고,
그렇기에 신이 부여한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마침내 타인을 통해 돌아보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몰락을 직감했습니다.
<2장>
잠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몽마의 장난이란,
어찌 그리도 무서운지.
그러나 그 어떤 악몽도, 좋은 꿈도,
꿈인 이상 언젠간 깨어나게 됩니다.
그 남자도 늘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죽음을 너무 생각하다 보니
그 죽음이 자신을 덮칠 순간이 두려워지고,
그것이 고스란히 꿈으로 나타남에
몸을 웅크립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끔찍한 죽음.
육체적 고통과 삶에의 몸부림.
그래서 때로는 자비롭게도 다가오는 죽음.
남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음을 깨닫고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쳐 깨어납니다.
축축한 시트를 그러쥐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그는,
문득
자신의 머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올라간 은 접시는
아무리 더듬어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아직도 악몽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도돌이표.
이제 그는 자신의 영원한 악몽을 깨닫습니다.
끝나지 않는 악몽은 더 이상 꿈의 영역이 아닙니다.
옆에 올려놓았던 자신의 머리가 생각했던
모든 죽음은 차례차례 자신의 죽음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매우 많았고,
많은 비극 속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단 한번의 몰락과 죽음의 이야기를,
그는 수없이 들려줍니다.
그중 한 이야기가
이렇게 또 시작됩니다.
낙하와 함께.
<최종장> Danse Macabre
폭군은 자신이 높이 쌓아 올린 시체더미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는 머리부터 물 속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잔잔히 흐르던 강물은 생각보다 어둡고 깊었으며 차가웠습니다.
숨을 쉴 수도, 발을 딛을 곳도 없어 균형을 잃은 그는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무의식이 외쳐대는 삶에의 집착을
자신도 모르게 뿌려대고 있었습니다.
zig, zig, zig. 죽음의 무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팔꿈치로 물장구를 치고 나온 죽음은
한밤중처럼 시커먼 물 속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zig, zig, zig.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몸은 얼어붙어오고 밤은 더욱 깊어만 가며,
물이 차오르는 귓속에서부터 신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위로...... 위로......!
머리 위로 수면의 빛이 보입니다.
많은 목숨을 빼앗은 튼튼한 팔을 힘껏 저어 몸을 저 위로 밀어 올립니다.
수면에 가까이 다가오니 자그마한 무언가가 희끄무레하게 빛을 반사합니다.
거품에 달빛이 반사된 것에 불과했을 수도 있었으나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저 정신없이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합니다.
지친 끝에 팽창하는 폐가 벌써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쓰디 쓴 물이 부글거리며 공기를 끄집어냅니다.
이제 더욱 시간이 없습니다.
손에 물체의 감촉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뜨거울 정도로.
손바닥을 찢고 손가락 관절 뼈를 긁어내며 얽혀드는 어떤 날카로운 물체입니다.
막상 붙잡았지만 심장마저 자극하는 불편한 통증에
그는 얼른 다음 행동을 취합니다.
팔을 내려봅니다.
박혀 들어간 물체가 딸려 내려옵니다.
새나오는 따뜻한 피와 몸을 타고 속에서 휘감아 도는 아픔이
한순간 분노까지 자극합니다.
그러나 그 아픔 덕분에 그는 이 물건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잘 하면 정말 자신을 구해줄 지도 모르는 물건입니다.
손에 파고든 예리한 금속 갈고리.
아무리 해도 빠지지 않는.
그리고 팔을 당긴 순간 흐리고 뻑뻑한 시야 속에서 목격된
동그란 찌와 가느다란 줄.
피아노 줄과 같고 바이올린 현과 같은
낚싯줄.
부글부글 거품을 토하며 그의 이성이 회전합니다.
무릇 도구가 그렇듯
이 물건은 혼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갈고리,
갈고리에 연결된 줄,
줄이 연결이 된 대와
그 대를 잡은 주인이 존재합니다.
이 순간 그는 주인이 월척을 낚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누구에게도 품어본 적 없는 깊은 애정에 다름없습니다.
그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도 좋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끼니를 때울 작은 생선 한 마리를 위해 낚싯대를 드리운 노숙자이든,
무료한 한때를 달래기 위해 강태공 흉내를 내는 노인네이든 상관없습니다.
자신을 물고기 취급하며 힘껏 당겨 주길 바랄 뿐입니다.
손의 격통에, 삶에, 인간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벅차 오르는 마음과 함께 아프로디테의 축복처럼 물결의 빛이 그의 몸에 보석처럼 반사됩니다.
공기를.......! 공기를 줘......!
공기 한 모금만 주면 내 재산, 내 권력 다 줄 수 있어.......!
내가 지은 죄 모두 속죄할 수 있어.......!
내 집 마루 밑에는 내 어머니가 묻혀 있어........!
나는 내 친딸을 내 손으로 죽이려 했어........!
신이여, 용서를........! 공기를.........!
어째, 반응이 오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손을 뻗어 찌를 붙잡고 크게 몸을 흔들어 낚싯대에 반동을 주려 합니다.
애간장이 점점 들어차는 물에 타들어 갑니다.
부비동이 물에 잠겨 양쪽 눈알이 빠져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 줄을 잡고 스스로 수면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휘청대는 중심에 다리를 내젓는 것이 어려웠으나 필사적으로 버르적댑니다.
개헤엄이 되었든 다른 어떤 볼썽사나운 움직임이 되었든 간에 무조건 의존해야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해
견딜 수 없이 외롭고 서글픕니다.
이건 무언가가 잘못되었습니다.
하늘대던 그의 긴 머리가 물결 따라 창백해 보일 만큼 요동칩니다.
그의 고통에 구겨진 얼굴로도 비웃듯이 날아듭니다.
붉은 구름 같은 피보라와 섞여 그를 감쌉니다.
반짝이는 거품이 더욱 빠르게 춤춥니다.
토하고 토해도 삼키는 것이 더 빨라지면,
그래서 끝내 토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정도로 삼키면,
생체리듬을 치는 모든 악기가 차례차례 부서지게 마련입니다.
부자유에 부자유가 더해지고, 격통에 격통이 더해집니다.
가느다랗지만 세상에서 가장 튼튼해 보이는 이 낚싯줄이
한쪽 다리에 걸려 대퇴부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다리가 구속되니 몸이 기우뚱 뒤집힙니다.
장기기관으로 물이 더욱 세차게 들어옵니다.
사타구니도 조여옵니다.
아무래도 성기 끝이 걸린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은 없습니다.
남은 건 스스로도 잘 모르는 본능의 영역입니다.
그렇게 얽힌 줄을 풀어보고자 양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잡아당깁니다.
어떤 줄은 손톱의 이빨도 안 들어가고,
어떤 줄은 손가락에 걸려 당겨지다 다른 곳을 더욱 세게 감습니다.
손에 박혀 들어간 갈고리는 아까부터 나올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눈앞을 가로지르는 이것이 머리카락이었다고 여겼으나,
아니, 이제는 얼굴을 조여 오기 시작합니다.
턱 아래로 목도 졸립니다.
몸이 가라앉으며 기울어지는 과정에서 줄이 온 몸에 감긴 모양입니다.
퍼즐이란 일단 잘못 풀리면 더욱 복잡하게 꼬여버리는 법입니다.
차라리 끊어내고 싶지만 이제는 늦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기에도, 눈을 감기에도 까마득히 늦었습니다.
줄이 양쪽 안구에 파고 들기 시작했는데도 눈을 감지 못합니다.
많은 근육이 이완되어 갑니다.
뒤틀린 십자가 같은 그의 몸에서
고통이 하나씩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zig, zig, zig. 죽음은 계속해서,
뼈로 된 건반과 현악기를 할퀴며 연주합니다.
마치 새벽처럼, 영원을 향해 어느덧,
이 불행한 세계를 위한 광기의 춤이 끝나갑니다.
그렇게 마지막 음을 연주하듯,
찢긴 손가락을 튕긴 것을 끝으로
그의 움직임은 침묵 속에 이내 잦아들어,
그렇게 강물이 감춘 작은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낚싯줄은 끝내 아무도 감아 올리지 않았습니다.
<에필로그> - <2장> 어느 언저리(Die Unvollendete)
도돌이표.
악몽에서 소스라쳐 깨어난 남자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봅니다.
하수구처럼 어두운 터널 한복판입니다.
몸이 젖어 있습니다. 상처도 많습니다.
추위와 쓰라린 고통이 밀려듭니다.
어쩌면 꿈도 최후도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남자는 일어나 출구를 찾아 무작정 걷기 시작합니다.
고독과 스산함, 적막함 속에서
그리운 누군가가 생각납니다.
출구로 나가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모르는,
터널 깊이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